삼성 때려치우고 PC방 차렸던 ‘흙수저 서울대생’ 지금은?


‘둥글둥글한 얼굴형, 축 처진 눈매, 라이언의 코와 비슷한 콧수염’ 카카오프렌즈 최고 인기 캐릭터 ‘라이언’ 과 꼭 닮은 사람이 있다. 

그는 바로 ‘카카오’ 김범수 의장이다. 2019년 5월 카카오는 대기업 반열에 오르며 굴지의 대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하지만 최근 혁신의 상징이던 카카오의 이미지가 추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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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를 만든 김범수 의장은 전례 없는 성공 신화를 쓴 인물이지만 최근 골목상권 침해 등으로 지난해 국정감사에도 출석하게 되었다.

국정감사에서 김 의장은 “초심으로 돌아가는 노력을 뼈를 깎는 심정으로 하겠다. 카카오는 논란이 되는 사업 영역은 자제하겠다.

글로벌 시장과 미래에 집중하겠다” 고 말하며 카카오의 재정비를 약속했지만 경영진의 주식 먹튀 논란으로 인해 또 한번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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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더 거대해지면서 잡음이 발생하고 있지만 여전히 혁신의 상징임에는 변함없는 카카오. 사실 이 카카오의 시작은 PC방이었다고 한다. 과연 어떤 이야기인지 한번 알아보자.

‘흙수저 서울대생’ 김범수

김범수는 전라남도 담양에서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모님은 농사를 짓다가 다섯 남매의 교육을 위해 무작정 서울로 이사했다고 하는데 정작 김범수에게는 공부를 강요한 적이 없다고 한다.

다만 넌 잘 알고 있다며 항상 응원을 해주셨는데 훗날 김 의장은 이런 격려와 지지가 정말 큰 힘이 되었다고 말했다.

카카오 김범수

집은 할머니를 포함한 여덟 식구가 단칸방에 살 정도로 어려웠지만 아버지가 정육업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상황은 나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부도가 났고 다섯 남매 중 김범수 혼자만 대학에 갈 수 있었다. 그만큼 힘들었던 상황 속에서 그는 재수를 했는데 그 때는 마음이 흐트러질 때마다 손가락을 베서 무려 세 번의 혈서를 썼다고 한다.

결국 그는 재수 끝에 서울대학교 산업공학과에 입학하고 과외로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하며 학교를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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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혈서를 써가면서 어렵게 들어간 학교였지만 고스톱과 포커, 당구, 바둑 등에 빠져 살았다고 한다. 이러한 그의 잡기는 훗날 그가 창업한 한게임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한다.

김범수는 1992년 삼성 SDS에 입사했고 이 때 네이버 창업주 이해진을 입사 동기로 만나게 된다.

사실 둘은 대학생 때부터 친분이 있었다고 하는데 김범수가 한 살 위 형이지만 재수하면서 같은 해 서울대에 입학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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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김범수는 삼성에서 PC 통신 유니텔의 개발과 운영을 맡았는데 출시 3년 만에 하이텔을 제치고 업계 1위였던 천리안을 바짝 추격하는 성과를 이뤄내기도 했다.

한석규와 전두현이 주연을 맡은 영화 접속에 나오는 PC 통신이 바로 유니텔이다. 여담으로 김범수는 삼성에서 일한 인연으로 이건희 회장 빈소에 조문을 간 바 있는데 이때 조문을 마친 뒤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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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직장은 삼성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삼성에서 배운 모든 것들이 한게임, 네이버, 카카오로 이어져왔다.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할 때 있었던 사람으로서 회장님의 경영 방식이 저에게도 베어 있다고 생각한다. 삼성 키즈 이후 네이버 카카오 출신들이 사업을 하는 것이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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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게임

김범수는 삼성에서 재직 중이던 98년 전국 최대 규모의 PC방 ‘미션 넘버원’ 을 오픈했다.

90년대 말은 스타크래프트 등으로 피시방 열풍이 불었던 시기였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김 의장은 삼성을 다니며 부업으로 PC방을 운영할 생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일반적인 PC방 사장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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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방 운영 당시 모든 컴퓨터를 한 자리에서 관리할 수 있는 PC방 고객 관리 프로그램을 제작한다. 그는 이 프로그램을 다른 PC방에도 팔기 시작했고 6개월 만에 5천만 원을 벌었다.

결국 삼성에서 퇴사하고 PC방 운영은 아내에게 맡긴 후 그는 한게임을 창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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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구, 고스톱, 포커, 장기 등을 인터넷으로 즐길 수 있는 국내 최초의 게임 포털이었던 한게임을 홍보하기 위해 그는 만들었던 PC방 관리 프로그램을 무료로 제공하며 한 게임을 pc방 컴퓨터의 초기 화면으로 설정하는 조건을 내걸었다.

그렇게 한 게임은 1년 6개월 만에 1천만 명의 회원을 모을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가입자 수를 서버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시장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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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게임은 수익 모델은 없는 상황에서 회원수만 늘어났기 때문에 적자가 나기 시작한다.

김범수는 이를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과감하게 네이버의 이해진과 손을 잡는 선택을 한다. 그렇게 한 게임과 네이버가 합친 NHN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후 한게임은 게임 유료화를 통해 초창기 NHN의 수익 창출에 커다란 기여를 하면서 현재 네이버의 초석을 다질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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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와 손잡은 한게임은 합병 이후 김범수와 이해진이 5년 동안 공동대표를 맡아 회사를 이끌었다. 하지만 2007년 김범수는 돌연 퇴사하게 된다.

당시 둘 사이에서 불협화음이 생겼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실제로 김범수 측근들인 한게임 멤버들 역시 김범수를 뒤이어 퇴사하기도 했다.

절대적 조력자 아내 형미선

김범수는 서울대 대학원 때 소개팅으로 지금의 아내 형미선을 만났다. 둘은 2년의 열애 끝에 결혼에 성공했지만 안정적인 결혼 생활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김범수가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하면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창업 후 돈줄이 마르자 아내는 회사를 그만두고 직접 밥을 해서 직원들의 식사를 해결하기도 하고 실제로 세 평 남짓한 사무실에서 모든 직원이 동고동락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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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김범수는 온라인 게임 사업에 총력을 기울이기 위해 운영하는 PC방을 아내에게 맡기기도 했다.

이렇듯 김범수의 성공에는 아내 형미선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그리고 2007년 NHN을 퇴사한 김범수는 가족과 함께 하기로 결심하고 아이들에게 1년만 휴학하고 놀자고 설득했다.

당시 아이들은 고1, 중3이었다고 하는데 ‘나도 재수했는데 1년 정도 늦게 대학 가면 어떤가’ 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가족은 여행 다니고 당구 치고 PC방을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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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간 동안 그는 아이들과 함께 오로지 노는 것만 했다고 한다. 김범수는 이 휴식 기간 중 최고의 기억은 가족과 함께 ‘디아블로’ 를 깬 것이라고 말했다.

식구 중에 딸이 게임을 가장 못 했는데 게임 고수인 아들과 아내의 지도로 실력이 일치월장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게 4명의 가족이 게임을 하다 보면 시계는 새벽 4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PC방 주인이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면 거기서 뿌듯함을 느꼈다고 한다.

카카오톡의 탄생

그러던 중 김범수는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생각나 “출근 좀 해야겠다”고 가족들에게 말하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는데 이게 바로 카카오의 시작이었다.

김 회장은 아이폰을 접하며 모바일 혁명을 예감했고 모바일 서비스에 집중하기로 결정한다. 그렇게 2010년 3월 카카오톡이 등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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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카카오톡이 완전 새로운 서비스였던 것은 아니었다. 그 당시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던 왓츠앱이 이미 서비스되고 있었고 우리나라에도 많은 사용자를 확보한 상태였다.

하지만 와츠앱은 유료 서비스였고 카카오톡은 무료 서비스라는 강점을 가지고 있었다. ‘무료 문자’로 포장된 카카오톡은 무서운 속도로 이용자를 늘려갔고 출시 1년 만에 1천만 명의 이용자를 모을 정도로 큰 성공을 거뒀다.

당시 카톡을 쓰기위해 스마트폰을 구매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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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톡은 기존 문자의 한계점 때문에 이렇게 급성장할 수 있었다.

당시만 해도 문자는 글자 수 제한에다 별도의 통신비를 지불해야 했었다. 하지만 카카오톡은 인터넷에 연결만 되면 글자 제한 없이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었고 귀여운 이모티콘은 흥행을 더 가속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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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PC의 기반 메신저들도 뒤이어 모바일용 앱을 내놓았지만 그 누구도 카카오톡의 벽을 넘지 못했다. 카카오톡은 2012년에는 가입자 5천만 명을 돌파하며 국민 메신저로 자리 잡게 되었다.

하지만 한게임 초기 때처럼 수익 모델이 없다는 것이 또한번 발목을 잡았다. 이용자는 많지만 어떻게 수익화 시킬 것인가가 카카오톡의 숙제로 거론되었다.

실제로 카카오톡은 상당 기간 특별한 수익 모델 없이 운영되었고 매달 서버 비용만 10억 원씩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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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김범수는 NHN을 퇴사하면서 받은 돈마저 고갈되자 텐센트로부터 투자를 유치하여 자금난을 해결하고자 하기도 했다.

분명 자금난을 겪고 있는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김범수는 먼저 사람을 모으고 시장을 지배하는 위치에 있을 때 과금 모델을 적용한다면 수익은 반드시 따라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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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수는 수익 모델에 대한 우려가 절정에 달했을 때 게임을 통한 수익 모델을 발표하여 단번에 흑자 전환에 성공한다.

이때 나온 게임이 국민 게임이라 불렸던 애니팡과 쿠키런 등이다. 이후 2014년 카카오는 네이버의 최대 경쟁사 다음과 합병을 선택한다.

이렇게 포털 사업까지 진출하게 되면서 카카오는 네이버를 위협하는 경쟁자로 떠오르게 된다. 사명은 다음 카카오로 결정되었고 1년 만에 다시 카카오로 변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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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도 카카오는 막대한 회원수를 바탕으로 카카오뱅크, 택시, 내비게이션, 쇼핑, 게임 등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갔고 카카오는 100개 이상의 계열사를 거느린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스크린 골프, 택시, 대리운전, 꽃배달 등 골목 상권으로까지 사업을 확장하면서 ‘내수용 기업, 독점 갑질 기업’ 이라는 오명을 쓰게되는 역풍을 맞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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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기업이 된 만큼 앞으로 더욱 사회적 책임도 다하길 바라며 김범수 의장은 앞으로도 후배들이 존경할 수 있는 벤처 기업의 신화로 남아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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